돈을 두 배 벌면
첫 취업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 쭉 가계부를 쓰고 있습니다.
월 지출은 얼마인지,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앞으로 들어올 돈은 얼마인지. 근로소득부터 강의와 집필로 생긴 소득까지 정리하다 보면,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그래프와 숫자로 남습니다.
가끔 그 궤적을 보고 있으면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만 다닌 것도 아니고, 퇴근하고 강의를 만들고, 책을 쓰고, 특강도 다녔으니까요. 제 젊음과시간을 꽤 부지런히 쪼개 썼습니다.
그렇게 사회 초년생 때보다 벌이가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그런데 행복도 두 배가 됐을까요?
여기서 돈을 두 배 더 벌면, 처음 취업했을 때보다 네 배쯤 행복해지는 걸까요.
소득 그래프 옆에 행복 그래프도 있으면 비교라도 해보겠는데, 그건 가계부에 나오지않더라구요.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더 벌어서 무엇이 달라지길 바라는지는,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열두 살의 2만 원
초등학교 5학년 때, 장수풍뎅이 알을 개당 200원에 수십 개 사들인 적이 있습니다.
그걸 부화시키고, 애벌레를 키우고, 성충이 되면 동네 아이들에게 마진을 남겨 팔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이 뭘 그렇게까지 했나 싶은데, 당시에는 나름진지했습니다.
그렇게 남긴 돈이 2~3만 원 정도였어요.
열두 살의 제게 그 돈은 말도 안 되게 큰돈이었습니다. 돈을 쓸 곳이라고 해봐야 문방구가 전부였거든요. 저희 동네에서 ‘쪽자’라고 부르던 200원짜리 달고나, 슬러시, 메이플스토리 딱지 같은 것들이요.
그러니 그 돈이면 제가 원하던 것들을 꽤 많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돈을 모아서 엄마 생신 때 동생과 함께 화분을 사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꽃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큰돈을 벌지만, 그 2~3만 원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어떻게 벌었고, 어디에 썼는지까지요.
같은 돈이 지금 통장에 들어온다고 해서 그때와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가가 달라진 탓도 있겠지만, 제 생활에서 그 돈이 차지하는 크기 자체가 달라졌으니까요.

돈을 벌지 않기로 했다
20대 초반에는 돈이 조금 다른 의미였습니다.
대학 등록금도 마련해야 했고, 자취방 비용도 해결해야 했습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휴학하고 알바를 세 탕씩 뛰기도 했어요.
당시 저보다 한참 선배였던 동아리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지금 당장 버는 돈보다, 앞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에 투자하라고요.
그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ㅎ
당장 제 살길이 막막했거든요. 미래에 더 잘 벌 수 있을 거라는 말로 지금 필요한 돈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앓는 소리를 하기는 싫었어요. 자존심도 있었고, 용돈을 주셔도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대학에 와서 공부를 썩 못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상위권에는 있었는데, 늘 뭔가 2% 아쉬웠어요.
좀 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시간을 조금만 더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한 번쯤 다른 생각 없이 공부에만 몰입해보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쌓이다가 스물넷, 다섯쯤 하던 알바를 전부 그만뒀습니다.
당시에는 꽤 큰 결심이었습니다.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제가 옳다고 믿으며 살아온 방식을 저버리는 느낌이었어요.
내 생활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돈을 벌지 않기로 한 거니까요.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그만두고 나니 학회장도 해보고, 알바에 쓰던 시간을 공부와 자기계발에 온전히 쓸 수 있었습니다.
그때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인턴은 서류부터 떨어졌을 것 같습니다.
당시 함께한 인턴들의 학점이 전부 4.5였으니까요..; (잘 지내니 얘들아?)
그렇게 개발자로서의 커리어가 열렸고, 개발에 재미도 붙였습니다.
돌아보면 제 진로가 크게 달라진 시기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한 때가 아니라, 당장 벌던 돈을 포기했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알바를 그만두면 받지 못할 돈만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반대로 알바를 계속하느라 충분히 쓰지 못하는 공부 시간의 가치는 잘 보이지 않았고요.
선배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내 능력으로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
사람마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나 시기는 다른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결혼을 앞두고 책임감을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죠. 저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분들도 있을 테고요.
저는 20대 때부터 조금 막연한 사명 같은 게 있었습니다.
나중에 내 능력으로 처자식은 먹여 살려야겠다는 생각이요. (아마 K-장남, 경상도 테토 아빠의 영향이지 않을까요..)
아직 꾸리지도 않은 가정을 두고 왜 그렇게까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한 몸 건사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은 갖추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제 능력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당장 가진 돈이 많지는 않아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 앞으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SSAFY에서 공부할 때도 아끼는 생활은 이어졌습니다.
교육지원금으로 받은 돈을 서울 월세에 쓰고, 옷은 거의 사지 않았습니다.
마트에서 일주일 치 장을 봐와 어떻게든 돈을 아꼈어요.
아끼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부터 잘하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첫 직장으로 넥슨에 입사했고, 매달 정해진 월급을 받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회사 일에만 만족하지 않고 강의와 집필, 특강을 이어갔습니다.
물론 전부 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재미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으면 보람도 있었어요.
그렇다고 돈을 더 벌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어쨌든 저는 제 능력을 키우고 열심히 일하면, 제가 바라는 생활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서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들
서울에 올라와 살다 보니, 제가 버는 돈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들이 보였습니다.
부동산 가격이나 가파른 상승률을 보고 있으면, 직장인으로 열심히 버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어디까지 가능하냐는 계산과 별개로, 일단 그렇게 느껴졌어요.
주변에서도 부동산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어떻게 자산을 불릴지, 처음에는 어떤 구축 아파트로 들어가고, 이후에는 어디로 갈아탈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앞으로의 삶에 어느 정도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아마 저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비슷하게 살지 않을까요.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살 집을 마련하고, 자산을 늘리고,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옮겨가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니까요.
저라고 다르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 능력을 키우고 소득을 늘리는 것과, 자산 가격이 움직이는 흐름을 잘 타는 것은 꽤 다른 일이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남들과 비슷한 속도로 따라가려 해도 신경 쓸 것이 많고, 그보다 빨리 가려고 하면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주식이나 코인이 크게 오르는 행운을 제 인생의 계획으로 삼을 수도 없겠죠.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선택이 더 빠른 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자산을 불리는 일이 재미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어디에 들어가서 얼마가 오르면 어디로 옮길지 계속 생각하는 생활에, 아직은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어디 외진 곳에 그럭저럭 살 만한 집 하나를 구하고 살 수도 있겠죠.
그렇게 말해놓고 나중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서울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 제가 원하는 생활인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아요.
부의 한계효용

경제학에는 ‘한계효용 체감’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추가로 얻을 때, 그것이 주는 추가 만족은 점차 작아진다는 뜻입니다.
이를 부에 적용하면, 이미 가진 돈이 많아질수록 같은 액수의 돈이 더 생겼을 때 느끼는 만족은 작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체 효용을 그래프로 그리면 계속 우상향하지만, 갈수록 완만해지는 모습이겠죠.
제가 생각한 돈과 행복의 관계도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다만 완만해지는 것과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돈이 주는 추가 만족이 줄어든다고 해서, 어느 금액부터 돈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제가 그렇게 살아본 것도 아닙니다.
돈 걱정 없이 살아본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것을 충분히 가져본 다음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두고, 거기 가봐야 별것 없을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솔직히 돈이 더 생기면 좋을 겁니다. 지금은 생각하지 못한 하고 싶은 일이나 갖고 싶은 것이 생길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제게 돈의 효용이 어디까지인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소득이 늘어난 만큼 행복도 늘어났다고 쉽게 말할 수 없듯이, 앞으로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제가 원하는 삶을 다 설명할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이 더 필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 돈으로 어떤 생활을 만들고 싶은지는 아직 알아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큰돈이 생기면 뭘 할까
오늘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동료와 복권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에는 당첨금이 엄청나게 큰 복권이 있다면서, 그런 돈에 당첨되면 뭘 하고 싶냐고 묻더라구요.
정확한 이름이나 당첨금보다,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돈이 생긴다는 가정이 중요했습니다.
일단 좋겠죠. 돈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요.
그럼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닐 거냐고 하면, 아마 다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개발은 취미로 해도 되잖아요.
그다음에는 뭘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예전에는 한 기업의 임원도 해보고 싶었고, 회사를 직접 경영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준비한 계획이라기보다는, 누구나 한 번쯤 그려보는 꿈에 가까웠어요.
그러다가 문득, 아무 걱정 없이 미친 듯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전문직도 떠올랐고요.
그런데 막상 글로 적으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암기력이 그렇게 좋았던가 싶습니다.
반년쯤 공부하다가 벽을 느끼고 그만둘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 돈만 생기면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그런 것도 한 번 해보고 싶은 거죠. 해보기 전에는 제가 얼마나 좋아할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돈이 많아진다고 제 능력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닐 겁니다.
공부가 쉬워지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겠죠.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해보는 동안 생활비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년 만에 포기하더라도, 그 시간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부터 계산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날 제가 떠올린 큰돈의 좋은 점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지금 모으는 돈
그렇다고 지금 제가 전문직 공부나 회사 경영을 위해 돈을 모으는 건 아닙니다.
요즘은 주변에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20대에는 내 능력으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면, 요즘에는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생활 자체가 궁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가 돈을 모으는 이유는 일단 결혼일 겁니다. 그다음은 살 집이겠죠.
그리고 아직 무엇인지 모를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고요.
이렇게 적고 보니, 돈이 필요한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네요.
다만 그 이유가 얼마나 모아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바뀌면, 다시 끝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집은 어느 정도여야 할지, 미래를 위한 준비는 어디까지 해야 할지.
더 준비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겠지만, 그동안 제 시간도 계속 지나갈 테니까요.
가족을 책임지고 싶어서 능력을 키워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아파트를 갈아타며 살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곳에 정착할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든 돈은 필요할 겁니다.
다만 제가 바랐던 것이 함께 잘 살아가는 일이었다면, 더 잘 준비하는 것뿐 아니라 그 생활을 실제로 시작하는 일에도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비가 충분해지는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처음에는 돈을 두 배 벌면 행복도 두 배가 되는지 궁금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적다 보니 지금의 저는 그 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신 왜 계속 더 벌려고 했는지, 요즘은 무엇을 바라는지 조금은 알게 됐어요.
열두 살에는 엄마께 화분을 사드리고 싶었고, 지금은 제 능력으로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살아보고 싶습니다. 중간중간 공부도 더 해보고 싶고, 엉뚱한 꿈도 꾸게 되겠죠.
앞으로도 돈은 열심히 벌 것 같습니다.
다만 얼마를 더 모았는지 확인할 때, 그 돈을 모으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도 가끔은 같이 떠올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