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연애 이야기를 하다 보면 편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함께 있을 때 눈치를 덜 보고, 억지로 할 말을 찾지 않아도 되는 사람.
저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오래 만날 사람이라면 편했으면 좋겠죠.
생각해보면 연애에서만 그런 사람을 찾는 건 아닙니다.
친구를 만나고, 동료와 일하고, 새로운 모임에 나갈 때도 편하게 지낼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관계마다 기대하는 것은 조금 다를 겁니다.
친구와는 별다른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할 수 있고, 동료와는 의견이 다를 때 어렵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편할 수 있겠죠.
그런 관계를 떠올리다가 저도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꽤 달라졌거든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초중학생 때는 말수가 적었고 교우관계도 좁았습니다.
대학생 때부터는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었고, 만나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그 시절의 제가 편하게 느꼈던 관계와 지금의 관계는 달랐을 겁니다.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달랐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사람을 만나는 방식부터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관계에서 신경 쓰는 일도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일로 고민하고, 한때 중요했던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됐을 수도 있고요.
지금의 저를 아는 사람이 초중학생 때의 저를 만났다면 꽤 다르게 느꼈을 겁니다.
그때의 저를 알던 사람이 지금의 저를 봐도 마찬가지겠죠. 어느 쪽도 제가 꾸며낸 모습은 아닙니다.
그렇게 지냈던 시기가 있었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달라졌습니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느 때의 나와 잘 맞았던 관계가 다른 시기에도 똑같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그렇다고 한때 잘 지냈던 시간이 잘못되는 것은 아니겠죠.
당시에는 함께할 이야기가 많았고, 비슷한 생활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 각자의 생활이 달라지면 만나는 방식이나 빈도도 달라질 겁니다.
특히 결혼하고 나면 더욱 체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관계가 나빠졌다는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조금 아쉽습니다.
감정을 다루는 일
20대 초반에 연애할 때는 제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화가 났을 때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도 지금만큼은 알지 못했고요.
나이를 먹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제 감정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화가 났다고 하는데 표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목소리나 행동이 거칠어지는 사람이 있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이 있고, 조용히 입을 다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예전보다는 제가 느끼는 것을 조금 더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말하기보다 잠깐 두고 보는 일이 생겼어요.
그 순간에는 꼭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별것 아니었던 감정들이 있었거든요.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생각해보면 아까는 왜 그렇게까지 신경이 쓰였나 싶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깐 화가 났다가 풀리더라도, 그때 한 말은 상대에게 오래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 기분이 괜찮아졌다고 상대도 괜찮아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시간이 지나도 계속 마음에 걸린다면 다시 이야기해야겠죠. 조금 가라앉은 뒤에는 무엇이 불편했는지 더 잘 설명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걸 성숙해졌다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감정을 알아차리는 일에 조금 익숙해졌고, 그것을 어떻게 전할지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겪는 저도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을 겁니다.
관계마다 바라는 것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모습도 있지만, 같은 시기에도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행동합니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과 오랜 친구가 아는 저는 다를 겁니다.
가족이나 연인에게 보여주는 모습도 같지는 않겠죠. 어떤 자리에서는 말을 많이 하고, 다른 자리에서는 주로 듣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페르소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쓰고 있는 가면이라는 말인데, 그렇게 부르면 어딘가에 진짜 모습이 따로 숨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편한 사람 앞에서 가장 힘을 덜 쓰는 모습만 진짜라고 하기에는, 제가 신경 써서 하는 행동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에게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는 것도 제 선택입니다. 가까운 사람이라서 더 조심하는 말이 있고, 함께 일하는 사이여서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일도 있겠죠.
저는 그런 모습도 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관계에서 똑같이 행동해야 솔직한 사람인 것은 아닐 테니까요.
상대에게 바라는 것도 관계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제 사적인 고민까지 알아줄 필요는 없을 겁니다. 대신 업무에서 의견이 다를 때 말할 수 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친구와는 한동안 연락이 뜸해도 만났을 때 그 이유부터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면 편하겠죠.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서로의 소식을 듣고 반갑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충분한 관계도 있을 겁니다.
모든 사람과 더 가까워져야 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잘 지내는지도 관계마다 다를 테니까요.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가까운 관계가 사람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으면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상대가 하고 싶은 일을 존중하고, 필요할 때 도와주되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편한 사람이 있으면 긴장을 풀고 쉬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곁에 있어서 평소라면 망설였을 일을 해볼 수도 있겠더라구요.
공부를 시작하거나 다른 일을 해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관심사도 달라지고 생활도 바뀌겠죠. 누군가의 응원 덕분에 해본 일이 저를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주변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습니다.
제 성격이 대학생 때 바뀐 이유를 특정한 관계에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람과 잘 지내는 동안에도 저는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잘 맞았던 모습으로 계속 지내는 것만이 좋은 관계의 조건은 아닐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잘 아는 사람인가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는 설명을 덜 해도 됩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말투, 피곤할 때의 버릇 같은 것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익숙함은 분명 편할 겁니다.
가끔은 그 익숙함 때문에 지금의 모습을 놓칠 수도 있겠죠.
예전에는 좋아했던 일이 이제는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늘 사람들과 어울리던 사람이 한동안 혼자 있고 싶을 수도 있고요.
반대로 조용하던 사람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예전의 모습만 기준으로 삼으면 서로 답답해질 수 있겠죠.
한쪽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야 하니까요.
저부터도 예전의 저와 지금의 저를 한 가지 성격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익숙한 모습으로 계속 있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 이것저것 묻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뒤에도 가끔은 물어볼 일이 생기겠죠. 요즘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전에는 좋아하던 일이 지금도 즐거운지 정도는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고, 예전과는 생활이 꽤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적당한 거리를 알아가는 일
달라진 상대를 알아간다고 해서 언제나 예전처럼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달라졌거나,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의 정도가 다를 수도 있겠죠.
그때마다 관계를 끝낼지 유지할지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만나는 횟수를 줄일 수도 있고, 어떤 일은 함께하고 다른 일은 각자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같이 일하기에는 편하지만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지는 않는 사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가끔 만나 반가운 사람도 있고요. 관계에 맞는 거리를 찾는 것도 잘 지내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제가 편하다고 상대도 편한지는 별도로 알아야겠죠.
저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 편한데, 상대는 그 말을 받아내느라 힘들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에게 맞춰주느라 제가 계속 피곤해질 수도 있고요.
어떤 관계에서 유난히 힘이 든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지 살펴봐야 할겁니다.
이야기해서 조정할 수 있다면 해보고, 계속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면 거리를 바꾸는 선택도 필요할 거에요.
모든 관계를 가장 가까운 상태로 유지하기에는 각자의 생활도 있고, 쓸 수 있는 시간과 마음도 한정돼 있으니까요.
앞으로 만날 모습들
처음에는 편한 관계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다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쓰다 보니 제가 누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같이 생각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네요.
이해받고 싶은 것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함께하고 싶은 일과 혼자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로 바라지는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 기대도 앞으로 달라지겠죠.
말수가 적고 교우관계가 좁았던 제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지낼 줄은 몰랐을 겁니다.
지금의 저도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고 누구와 가까이 지낼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편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다만 지금 잘 맞는다는 느낌만으로 앞으로도 같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래 지내는 동안 다시 물어보고 알아갈 일이 생길 겁니다.
예전보다 가까워지는 관계도 있고, 조금 떨어져 지내는 편이 서로에게 나은 관계도 있겠죠.
그때마다 처음과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관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바뀐 만큼 상대도 바뀌었을 테니까요.
오래 알았으니 다 안다고 생각하기보다, 가끔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다시 물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까웠던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면서도,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은요.
참고한 글
[1] Feeney & Collins (2015), Thriving Through Relationships. 가족, 친구, 연인 등 가까운 관계가 어려움을 견디고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는 과정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정리한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