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개발자분들이나 취준생분들이라면 한 번쯤 "개발에 관심 많은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얼마 전, 카카오뱅크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SW마이스터고 학생들이었어요. 약 80명의 학생들 앞에서 20분간 발표를 하게 되었죠. 평소처럼 개발자나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하는 발표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아직 실무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까?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야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까? 짧은 시간 안에 고민이 많았어요.
이 글에서는 발표 준비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발표 이후 교장선생님의 후기까지 흥미로운 경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기술적인 내용이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서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2주 뒤에 발표 가능해요?
1월 2일, 연초의 바쁜 업무 속에서 한 통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카카오뱅크에 SW마이스터고 학생 80명이 견학을 온다는 소식이었어요.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에서 20분짜리 발표를 맡아줄 수 있냐고 요청하셨죠.
사실 저도 그때 알게 됐는데, 이 행사는 꽤 급하게 결정된 일정이었어요. 담당 부서에서도 행사 준비로 분주한 분위기였고, 저 역시 발표를 준비할 시간이 고작 2주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행사일인 1월 17일은 목요일. 평소처럼 업무에 치이면서도 발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시간이 많다면 멋진 발표 자료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적으로 새로운 걸 거창하게 만들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럼,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야겠다."
그렇게 떠오른 것이 제 학창 시절이었어요.
중학생 때의 경험, 대학생 때의 고민들… 남들과 조금은 달랐던 제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서 "이거라면 하루 안에 발표 준비가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발표를 맡았고, 제 주말은 또다시 사라졌습니다.
내가 예비 고등학생이라면 뭘 듣고 싶을까?
발표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내가 예비 고등학생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였어요.
여태까지 수십 번 발표를 해봤지만, 대상이 예비 고등학생이라는 점은 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사실, 제 학창시절을 회상하기엔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희석되었고, 그리고 요즘 고등학생들이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세대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하고싶은 얘기만 하는 발표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또한 SW마이스터고 출신의 개발자분들과 멘토링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실제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어요.
결국 학생들의 눈높이를 이해하기 위해 정보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마침 평소 고등학생들과 교류가 많고 해커톤을 주최하는 대표님과 친분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SW마이스터고 졸업생분의 현실적인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어요.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마이스터고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생소했지만, 덕분에 학생들의 학업 방식, 학교 분위기, 국가지원 프로그램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죠.
구체적인 내용은 주관적이라 모두 공개하긴 어렵지만, 학생들이 어떤 상황에서 공부하고 있을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어요.
마이스터고 학생분들은 수능이라는 전국 고등학생들이 치뤄야하는 공통된 학업이 아닌, 소프트웨어라는 다소 구체적인 공부를 하게 되겠죠.
이론적 지식뿐 아니라 다양한 실습을 통해 결과가 바로 나오는 분야이다 보니 누가 잘하는지가 더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학창 시절에 경험해 보았는데요, 부끄럽지만, 이때 자만의 길로 빠져서 헤어나오는데 오래 걸렸던 경험도 있었답니다.
그들이 겪을지도 모르는 그 상황이나 감정,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준비하게 되었고 제목은 "우리는 언젠가 개구리가 된다"라는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우물 안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이죠.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하면 좋을까?
짧은 발표에도 유대감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발표자와 발표를 듣는 청중 사이에 유대감이 높을수록 호응이나 집중력이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와다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보다는 도입부에서 발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관심이 생길만한 키워드나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준비했습니다.
저는 고1로 올라가던 시절에 게임을 정말 좋아했어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았나요?
네 그래서 게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무슨 게임인지 아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알고 있더라구요.. 역시 세대를 거스르는 메이플..
저는 게임을 잘하진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즐기기만 하는 즐겜유저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 반복적인 사냥만 하던 방식에 지루함을 느꼈고 갑자기 매크로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땐, 구글링이나 코딩, IDE라는 기본적인 용어도 모른 채 "매크로를 만들래!"라는 집념 하나로 help 파일 하나를 보고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백과사전처럼 언어 사용법에 대한 help 파일이 있었고, 색인 기능으로 내가 필요한 기능을 찾고 Example을 보고 하나씩 테스트해가며 기능을 만들어갔어요.
이런 식으로 익숙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청중이 발표자의 이야기를 자신과 연결하여 듣게 되기 때문에 게임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활용한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우물에 빠졌던 중학생
그때 당시, 중고등학교에서 개발을 할 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었습니다. 친구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제게,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관심을 보였고, 누군가는 자기가 필요한 기능을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하면서까지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렇게 친구들도 점점 많아졌고 말 없고 소심했던 제가 조금씩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갑작스럽게 제 능력을 인정받은 탓이었을까요? 조금은 자만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원리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툴에 의존하고 필요한 기능만 뽑아 쓰던 시절이었거든요. 친구들에겐 빈 껍데기였던 이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할 줄 모르는 것도 할 줄 안다고 거짓말 쳤던 기억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환경이 바뀌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응용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학생 여러분께 툴러(툴만 다루는 것)였던 제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기초 학습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학생분들은 현재 학업을 통해 기본기를 다지고 있는 과정에 있기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다지는 것이라고 말이죠.
학생분들이 단기적인 인정보다는 더 긴 호흡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다른 우물도 존재한다
결국 제가 계속해서 말하고자 했던 "우물"은 "환경"을 뜻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컴퓨터를 잘 다루기도 했고 모두가 저보고 잘한다고 말해서 제가 1등인 줄 알았지만, 환경이 달라지니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 해커톤이나 각종 대회에 참가했지만, 입상조차 하지 못했던 순간
- 프로젝트에서 능력 부족으로 기한 내에 구현을 마치지 못했던 순간
- 대회장에서 옆 팀의 수준을 보고 감탄만 하고 있었던 순간
- 대학생이 되어 나보다 훨씬 뛰어난 동기를 마주했던 순간
이런 경험을 하면서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던거죠.
그때의 괴리감은 엄청났습니다. 갑자기 제가 바닥으로 추락한 기분이었거든요.
하지만 이 과정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작은 우물 안에서 스스로를 최고라고 착각한 채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없습니다.
늘 속해 있던 우물에서 한 걸음만 나와도,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구나" 를 깨닫게 됩니다.
학생들도 지금은 "고등학교라는 우물" 안에서 성장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만 머문다면, 실력이 성장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발표에서 "스스로의 우물을 넓히는 방법" 을 이야기했습니다.
- 해커톤, 개발 커뮤니티, 스터디 그룹을 활용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것
- 스스로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겸손한 태도를 가질 것
지금 있는 환경에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넓은 세계를 탐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솔직해지기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열등감을 느낍니다.
때로는 자격지심이 들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 감정이 든다고 해서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저는 발표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열등감을 부정하지 말고,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으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학습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다 보면,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단순히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사고하는지 따라 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건 과거의 저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저도 과거엔 저만의 방식으로 공부를 하다가 도저히 성적이 오르질 않아서 소위 잘하는 친구들의 학습 방식을 따라 해봤는데, 비로소 이렇게 공부하는 거였구나 하고 깨달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변화라는 것이 결국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다양한 시도를 할 때 찾아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시간 관계상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전달드리진 못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전달드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우물을 발전시키는 방법
이 주제는 새로운 하나의 발표가 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라 잠깐 언급만 하고 넘어갔어요.
발표 내내 "다른 우물도 보셔야 해요!"라는 메세지를 전달했지만, 지금 속해있는 우물에서 다 같이 성장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거든요.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속한 환경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우물로 옮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저 역시 고민하고 있는 과제입니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속한 환경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지금 있는 우물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것인가" 라는 주제로 더 깊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발표가 끝나고 교장선생님께서 발표자에게 찾아와 명함을 건네주셨습니다.
"너무 좋은 내용을 전달 주셔서 감사하다"며 학교 근처에 오거든 꼭 연락 달라고 하시더라구요.
제 기억 속 교장선생님은 늘 먼 존재였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단 한 번도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고, 늘 무대 위에서만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단순히 먼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그룹을 이끄는 리더처럼 느껴졌습니다.
학생들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많은 책임을 짊어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발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주말 하루를 투자해 발표 자료를 만들었고, 시간이 촉박했던 만큼 자료의 완성도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했습니다.
연습할 시간도 없었고, 대본 없이 발표를 진행했기에 생각보다 매끄럽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디 이번 발표가 예비 개발자로 성장할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여담
모든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저와 함께 발표를 했던 분과 행사를 주관하신 부서의 동료께서, 제 블로그 글을 봤다며 먼저 인사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마 아래의 글을 보신 것 같더라구요.
실제로 최종 합격하신 분들 중에 아래의 글을 보고 오시는 분들이 꽤 계시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면서, 블로그 글을 작성할 때 신중히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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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런 지식공유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MSA 전환이 취미입니다. 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몰입감있게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