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이 글에서는 700명의 개발자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된 이야기, 사회자를 맡게 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다.
나는 적지 않은 발표와 사회를 진행한 경험이 있었고 100명의 인원도 정말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700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한다니, 어떤 느낌이었을까?
KODE RUNNER 2024
현수막 사진을 봤다면 알겠지만, 이 행사는 카카오뱅크의 비공개 기술 컨퍼런스이다.
카카오뱅크에 재직 중인 개발자들이 모이는 행사이며 그 수가 무려 700명에 달한다.
정말 많은 스태프분들과 XR 조직에서 행사를 이끌어주셨다.
컨퍼런스의 규모, 체험 부스 등 공개 컨퍼런스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규모를 자랑한다.
평일에 진행되는 행사이기에 각 담당자들은 장애 대응 노트북과 사원증을 지참한다.
사원증으로 출석을 체크해서 근무로 인정해 주는 시스템이다.
700명은 이런 느낌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CTO님께서 키노트를 진행하는 사진이다.
사진에서 발표 단상이 보여서 알겠지만 저기서 발표를 하게 된다.
그 앞에는 700명의 개발자가 착석해 있다.
컨퍼런스엔 기술 세션이 있고 페차쿠차라는 자신의 썰을 푸는 세션이 있다.
기술 세션은 위 단상이 있는 홀이 아닌, 3개의 분리된 공간에서 동시간에 진행되어 자신이 원하는 세션을 들으면 된다.
키노트, 점심식사, 페차쿠차, 외부강연은 위 단상이 있는 홀에서 발표를 진행한다.
나는 여기서 페차쿠차 세션의 사회와 발표를 맡게 되었다.
이 단상에 서게 된 이야기
어떤 발표를?
페차쿠차는, 점심시간에 진행되는 세션이라 다들 점심 식사를 하시며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세션이다.
듣는 사람은 가볍지만 발표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가벼운 시간이 아니었다..
페차쿠차는 총 5개 주제로 구성되었는데, 프리다이빙, 러닝, 사주, 육아, 돈 벌기(?) 였다.
나는 이 중 첫 발표 순서였고 "11살부터 돈을 벌게 되었던 이야기"를 발표하게 된다.
11살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고 청소년기엔 어떤 아이템으로 돈을 벌었는지, 과거의 내가 돈을 대했던 태도와 현재의 내가 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일반적인 발표와는 다르게, 재밌는 룰이 하나 있다.
20*20 룰이 적용된 발표
페차쿠차는 20장의 장표를 구성하고 각 장표 당 20초라는 고정된 시간만큼만 발표할 수 있다.
즉, 총 6분 40초 만에 발표를 끝내야 한다.
이러한 타이트한 룰 때문에 애드리브를 넣기 매우 어려우며, 미리 대본을 준비하고 정해진 프로세스대로 진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나는 장표를 보고 키워드를 떠올려 발표하는 스타일인데, 대본대로 읽지 않으면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발표 준비가 꽤나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내겐 꽤 도전적인 준비 과정과 발표였다.
어쩌다 발표를..?
링크드인으로 알게 된 동료가 있었고 그분과 회사에서 커피챗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XR 조직이셨고 나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야기를 나눈 주제로 발표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해주셨다.
여러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린 나이에 돈을 벌게 된 이야기]나 [혼자 떠난 일본에서 인플루언서를 만나 친구가 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컨퍼런스에 대해 알게 되었고 2025년에 기술 발표를 하기 전에(희망사항) 미리 예열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발표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작된 발표
많은 동료, 입사 동기분들께서 응원과 함께 사진을 남겨주셨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발표 이후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는 비공식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한다.
사회를 맡게 된 이야기
어쩌다 사회를 맡았나
그때 친해졌던 XR 조직의 동료에게,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탁의 내용은 간단했고, 명료했으며, 타이핑 중인 키보드 소리를 잠시 멎게 만들었다.
내가 발표하게 되는 해당 세션의 사회자를 부탁했었다.
아 발표랑 사회자를 같이 준비하라고?
예전에 글또에서도 100명 규모의 백엔드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사회와 발표를 같이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마음 편하게 준비했다.
왜냐하면 컨셉 자체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편안한 반상회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여긴 회사잖아...
...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사전 준비
사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사실 발표보다 더 큰 비중으로 준비했던 것 같다.
이 행사를 이끌어주는 조직이나 스탭은 따로 있지만 행사가 시작되는 순간, 어느 행사던 사회자가 작은 리더가 되어야 한다.
사전에 발표자들의 이름, 발표 자료를 모두 정독했다.
세션의 오프닝 멘트와 클로징 멘트가 있듯이 각 발표에도 오프닝 멘트와 클로징 멘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세션 오프닝 멘트
- 첫 번째 발표 오프닝 멘트
- 첫 번째 발표 클로징 멘트
- ... 중략
- 다섯 번째 발표 오프닝 멘트
- 다섯 번째 발표 클로징 멘트
- 세션 클로징 멘트
이런 구조로 준비를 했다.
오프닝-클로즈 멘트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 발표자가 어떤 직군인지, 어떤 주제인지, 어떤 내용인지, 이 내용 안에서 어떤 것을 강조하는지를 파악하면 더욱 재밌는 멘트들을 준비할 수 있다.
한 발표자를 예로 들면 데이터사이언티스트 직군이지만, 발표 주제는 사주였다.
이 두 관계가 양극적인 분석 방식의 만남이라고 생각되었고, 이를 사회 오프닝 멘트에 넣기로 했다.
오프닝 멘트로 청취자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는 온전히 사회자의 역할이다.
현장 준비
사전 사회 준비가 끝났다.
아니, 사실 끝나지 않았다.
진짜 준비는 현장에서부터다.
현장에서 행사 준비를 하다 보면 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
여러 변수가 생기고 시간이 딜레이 되기도 하며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발적 상황에 참여자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멘트를 치는 것 또한 중요한 역량이다.
가장 먼저 했던 것은 현장에서의 발표 자료 체크였다.
파일을 옮기며 폰트가 깨지는 경우도 있고 최신 버전의 장표가 반영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입장/퇴장 동선이었다.
단상이 넓기에 일관된 입퇴장 동선을 밟아야 깔끔해 보였다.
그래서 단상에 내려가거나 올라갈 때 어떤 경로로 올라가고 어떤 경로로 퇴장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정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타이밍에 발표자들을 올려 보내고 내려 보내는지다.
이건 사회자와 발표자끼리 신호를 맞춰야 하는데, 내가 관중에게 박수를 요청하면 단상 아래에서 올라가고, 내려가기로 약속했다.
또한 카메라 촬영이 들어가기에, 발표자가 단상에서 움직일 때 카메라가 따라 올건지 아니면 고정된 앵글이 있는지 체크했다.
녹화본이 제공될 거니까, 카메라 이동 여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발표자들의 스타일도 다양한데, 마이크를 들고 가만히 발표하시는 분도 있는가 하면 마이크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분들도 계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유선 마이크냐, 무선 마이크냐를 체크해야 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발표가 끝나고 질문자들에게 무선 마이크를 전달해야 하는데, 행사장에 준비된 무선 마이크의 갯수 체크도 중요하다.
안 그러면 700명이 있는 공간에서 무선 마이크 하나 들고 스탭이 전력질주로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 준비된 무선 마이크는 단 2개였고, 행사장이 너무 컸기 때문에 질문자에게 마이크 전달을 하기엔 2개도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발표자는 유선 마이크로 진행하되 줄 길이에 따른 제한적 이동 반경을 말씀드렸다.
실전으로 들어가실게요.
세션의 시작은 사회자의 안내 멘트로부터 시작된다.
보통은 약속된 시간에 맞춰 착석하기가 어렵기에 5~10분 정도 딜레이 될 것을 예상하고 있다.
미리 착석한 사람들은 "왜 시작을 안 하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기에, 아직 착석 중인 분들이 계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안내 멘트를 치면 된다.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며 사회자의 간단한 소개와 오프닝 멘트를 이야기한다.
이번 세션은 어떤 세션인지, 가볍게 점심 식사를 하시되 용기 내어 발표하는 동료에게 큰 박수를 부탁드린다는 등
우리가 아는 그런 멘트들 말이다.
하지만 실제론 이렇게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모두가 긴장하는 상황 속에서 이상적으로 풀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항상 발표자의 행동을 보면서 멘트를 조절했다.
어떤 분은 사전에 약속된 것보다 빠르게 올라가기도 했기 때문에, 내가 준비한 모든 멘트를 쳐버리면 단상에서 우두커니 멍 때리고 있다가 머쓱하게 박수를 받아야 한다.
마무리
발표에서 아쉬웠던 점
20*20 룰이 적용된 내 발표 퀄리티가 아쉬웠다.
라이브로 진행하다 보니 말을 절거나, 실수할 것을 대비해 한 장표에서 시간을 좀 더 여유 있게 확보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말을 더 빠르게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미 20초라는 타이트한 시간을 쉴 새 없이 빠르게 몰아치면 관중은 더욱 숨 가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완벽을 추구하는 내 주관적인 생각이고,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긴다면 한 장표에 최소한의 내용만 넣어 여유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것 같다.
컨퍼런스에서 아쉬웠던 점
오전엔 기술 세션을 듣지 못하고 발표&사회 리허설을 진행했다.
나도 한 명의 개발자로서, 동료 개발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들었다면 재밌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녹화영상이 제공되긴 하지만, 그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당시엔 발표를 듣고자 하는 욕구보다 준비했던 발표와 사회를 잘 끝내자는 생각이 더 컸기에 리허설을 택했다.
이거 외엔 모든 것이 너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외전
컨퍼런스에서 빠지면 아쉬운 굿즈
컨퍼런스의 스티커를 수집하는 개발자들이 있을 정도로 굿즈에 대한 인기는 엄청나다.
이번 코드러너 2024에서도 개발자 밈으로 스티커들이 만들어졌고 텀블러, 가방 등이 제공되었다.
다양한 부스
비공개 컨퍼런스가 궁금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정말 흥미로운 부스가 많았는데, 카카오뱅크 최초 장애 사례도 있었고 NVIDIA에서 고가의 장비를 빌려와 전시하는 부스도 있었다.
목에 핏대 세워가며 응원했던 단체 게임
소고기를 걸고 팀별로 돈 정확하게 카운트하는 팀 게임을 했는데, 전사에서 내가 속한 조직이 1등을 했다....
그 열기는 살짝 과장 보태서 2002 월드컵 수준이었다.
게임이 너무 신박했고 긴장감을 유발하면서도 동료들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어 더욱 재밌었다.
AI 춘식이 해킹하기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던 부스를 소개한다.
AI 춘식이가 5천 원에 도시락을 판매하는데 이걸 정가가 아닌 할인된 가격에 사면 점수가 기록되는 방식이다.
AI 해킹에 정말 다양한 방식이 있고 여러 방식을 시도하여 상위 점수로 랭킹 되면 상품을 받을 수 있었다.
역시나 나중엔 인기가 많아져 웨이팅이 길어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정말 많은 시도를 하고 채점 알고리즘이 byte가 적을수록 유리한 것 같아 영어로도 해봤다.
하지만 랭킹 진입엔 실패했다..
사회자의 시야
아마, 이런 컨퍼런스 홀 앞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어떤지 모르는 분들도 계실듯하다.
리허설 때 잠깐 찍어뒀던 사진이며, 여러 페이지로 구성된 사회 스크립트와 커피, 수정 사항을 체크할 펜이 있다.
입사한 지 고작 9개월이 된 시점에서, 운 좋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이런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이걸 준비할 때 업무, 강의, 축가 준비, 발표 준비, 사회 준비, 책 집필 등 많은 일들이 병렬적으로 생겨서 몸도 마음도 지쳐갈 때였다.
무얼 위해 쉴 새 없이 달리는진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후회하지 않을 무언가를 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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