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후회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후회를 언제 하시나요? "후회된다"라는 표현을 언제 쓰시나요?
저는 20대 초반, 어느샌가부터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는데요.
매 선택의 순간에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 이후에 후회되지 않도록 살아갔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신입 개발자로서의 2년을 돌아보며 한순간도 후회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매 순간 어떤 태도로 상황을 대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동기부여하기
2년 전 첫 선택은 넥슨코리아 신입 공채 최종합격 발표 후였습니다.
한 컨설턴트님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승현님이 기대하는 트래픽도 없을 것이고 게임 회사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웹 개발 우선순위가 낮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지요.
제 개발 성향을 보고 걱정 어린 조언을 해주셨지만, 이미 입사를 수락하고 난 뒤였습니다.
컨설턴트님의 말씀을 듣고 아차 싶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했던 시각에서 바라봐 주셨거든요.
부트캠프 퇴소 통보를 하기 전에 굉장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냥 내가 운이 좋아서 합격하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고, 내가 여기 말고 다른 회사에 붙을 인재인가? 에 대한 생각도 했거든요.
결국 제 선택은 일단 입사를 해보고 이직을 준비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언제 또 이런 큰 회사에서 일할 경험을 누리겠어요.
애석하게도, 실제로 입사한 뒤엔 그분의 말씀이 상당 부분 적중했습니다.
애초에 게임 개발자와 웹 개발자의 연봉 테이블이 꽤 다르기도 했고, 게임 개발자에겐 "프로그래머"라는 호칭을, 웹 개발자에게는 개발자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거든요.
이런 사소한 회사 정책이 신입이었던 당시에는 꽤 차별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게임 개발자는 돈을 벌어다주니 머릿속으로 이해는 된다만 다른 게임사에서는 웹 개발자도 연봉 테이블이 똑같던데 왜 넥슨만.."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마치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꽉 다문채로 한 대라도 때릴 것처럼 포즈를 취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백오피스 개발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늘 기술 스터디에서 나온 트래픽이 어쩌고 하는 내용은 없었어요.
여기가 첫 커리어지만 다음 커리어가 벌써부터 걱정되기도 했죠.
내가 이직할 수 있을까? 계속 백오피스 도메인을 못 벗어나면 어쩌지?
걱정하는 제 모습을 보며, 제가 원했던 환경은 더 많은 트래픽을 다루는 곳임을 한번 더 알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트래픽만을 원한 것은 아니고 트래픽이 많은 환경에서 거쳐야 하는 과정과 판단, 사고를 원했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사 결정 선택을 후회하냐고 물어보면 저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했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새로운 동기 부여를 줬습니다.
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 Next Step에 대한 고민을 미리 해야만 했죠.
그래서 훗날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일단 뭐라도 굴려봤어요.
그게 제 인생에 도움이 되는 눈덩이인지 모른 채 말이죠
눈덩이 굴리기
다행이랄까요, 워라밸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퇴근 후 남는 시간과 주말에 남는 시간 동안 스터디를 마음껏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기술 스터디 2개를 리드하고 사이드 프로젝트 커뮤니티에 참여해 프로젝트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는 별생각 없이 굴렸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쳐다보니 큰 눈덩이가 되더라구요.
이 눈덩이는 제게 1인 프로젝트를 할 기회, 발표할 기회, 기술 스택 선정의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눈덩이를 굴렸는지 살펴볼게요.
스터디로 눈덩이 굴리기
단순히 책을 읽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스터디보다는 어떻게 해야 모두가 원하는 공동의 목표에 "함께" 도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했어요.
기술적 지식뿐 아니라 스터디 리딩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죠.
스터디 리딩을 통해 시도했던 다양한 방법들은 회사나 다른 대외활동에서 만들어지는 그룹에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치들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기술적 지식은 팀원을 설득해 회사 프로젝트에도 적용해 볼 수 있었고, 특정 기술 스택에 대해 소개할 수도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어요.
진행했던 한 스터디에선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MSA)와 관련된 지식을 습득했는데요.
현재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기술적 문제점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고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개발도 자발적으로 해볼 수 있었어요.
꼭 제가 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흘러 장애가 발생하던 제가 아닌 다른 팀원이 이를 알던 자연스레 알게 됐겠지만
이런 눈덩이를 굴려가는 과정에서 능동적인 스탠스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뿌듯했고 지금 "정처 없이 달리는 이 과정이 틀린건 아닐까"라는 것에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죠.
대외활동으로 눈덩이 굴리기
사이드 프로젝트
인생에 굴곡이 있듯이 항상 성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죠.
제 실패의 기준은 "정해둔 기한 내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실패는 제게 자존감에 타격을 준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안드로이드, iOS, 디자인 모든 파트에서 백엔드의 완성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한 내 완수하지 못했고 결국 저는 실패라는 구렁에 빠집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너무 부끄럽고 믿고 따라와 준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 책임을 느꼈고 PM으로서 매니징도 했는데 정작 제가 개발하는 백엔드 쪽에서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거든요.
저는 이 과정으로 제 능력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을요.
회사의 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혼자서 이악물고 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주변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능력이다"라고요.
내가 소화하지 못하는 양이라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처음부터 볼륨을 작게 잡으면 간단한건데 말이죠.
이게 팀의 존재 이유이자, 매니징 역할의 중요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ㅏ
여담으로, 참 고마운 것은 함께했던 팀원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 그릇은 간장종지일까
여러 활동을 하다 보면 내 그릇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회사에서는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거나 더 큰 규모의 그룹 리드를 해야 하는 경우가 해당되겠죠.
물론 그 그릇의 크기는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을 수도, 노력으로 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IT커뮤니티 회장을 하게 되면서 이런 상황에 직면할 수 있었는데요.
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에서 몇 번의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루에 쳐낼 수 있는 업무량이 10인데 한 달간 쳐내야 하는 업무량이 500이라면, 내 몸을 아무리 불사른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되더라구요.
시간이 부족하면 잠을 줄이면 돼
잠을 줄여서라도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는데, 인간의 몸은 참 정직합니다.
수면이 부족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작은 병에 시달리게 되더라구요.
이런 문제는 곧 제 삶의 모든 영역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결국 잠을 줄이는 것은 포기하고 IT 커뮤니티에 시간을 할애하고자 회사에 연차를 내고 IT 커뮤니티 운영 업무를 하기도 했죠.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면 이런 역전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겠죠. 건강이 상하는 일도요.
내가 할 수 있는 양이 어느 정도인지 빠르게 파악하고 포기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몇 주 간 회사에는 거의 빈사상태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근데 심장이 뛰었어요. 제 한계를 직면했다는 사실 자체가요.
나는 꽤 그릇이 작은 사람이구나 이것도 몰랐구나 하면서 깨닫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대외활동을 통해 부족한 점을 하나씩 발견하고, 뭐라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계속 마주하다 보니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때쯤부터 후회하는 방법이라는 건 머릿속에서 지워졌던 것 같아요.
무한동력에 가까운 동기부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경험으로 간장종지보다는 커지지 않았을까요.
기록으로 눈덩이 굴리기
회사에서 수행했던 모든 업무를 기록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요.
내가 오늘은 뭘 했고, 내일은 뭘 할 것이며,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어떤 부분을 잘했는지 기록했어요.
이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내 업무 수행능력을 파악하기에도 좋았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줬습니다.
오늘의 성과를 평가하고, 내일의 목표를 세우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죠.
업무를 하다 보면 깜빡하는 일이 생길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줄일 수도 있겠습니다.
팀원과 커뮤니케이션할 때도 내 업무 숙지에 굉장한 도움이 되기도 하구요.
신입 때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팀원과 눈덩이 굴리기
협업을 해야 하는 곳이라면 결국 우리는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팀 전체를 상향평준화시키고 싶었어요.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없애거나, 사람의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하거나하는 것들로 말이죠.
그래서 저는 코드 리뷰와 Git 형상 관리(Git Flow) 방식의 중요성과 방법론을 팀에 제안했고, 당시 팀장님과 함께 팀의 코드 품질과 협업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료들의 지지와 신뢰,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번아웃으로 눈덩이 굴리기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인간이라는 게 지치더라구요.
저도 그랬습니다. 끊임없이 해야 하는 공부에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괜스레 무력해지더라고요.
네 저도 결국 번아웃을 마주했습니다.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의 통칭. 정신적 탈진
출처: 나무위키
처음엔 평소와 같은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아 좌절했어요.
이런 것도 극복하지 못하는 제가 너무 한심했습니다. 인정하기 싫었어요.
나중엔 결국 인정했습니다. 번아웃인걸요.
어찌해야 할지 모르다가 이것저것 시도해 봤어요.
남들은 이럴 때 맘 편히 논다고 하더라구요.
난 어떻게 놀았는지, 뭘 해야 논다고 생각하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나 자신을 잘 몰랐어요.
누군가는 침대에 눕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고 하는데, 저는 침대에 눕는 건 밤에 잠을 자는 순간에만 눕는 용도지 낮잠을 잔다거나 하는 행동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어요.
이처럼 사람들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저도 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미친 듯이 헬스도 가보고, 여행도 가보고, SNS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냥 부담을 버리고 스트레스받지 않게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그러다 방법을 찾았죠.
번아웃이 올 것 같은 징조가 있습니다.
그 징조가 오면 업무 부담을 덜고 쉬는 시간을 꼭 챙겨줍니다.
만약 이미 번아웃이 왔다면 롱 런을 위해 잠깐 쉬어갑니다. 안 그러면 번아웃이 계속 길어질 수 있더라구요.
이런 시도를 통해서 길게 달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치면 지쳤다고 인정하고, 쉬어가자.
쉽지만 어려운 그것을 해내기 시작합니다.
피드백으로 눈덩이 굴리기
당시 팀장님께 피드백을 요청드렸습니다.
가감 없이 매니저 입장에서 저는 어떤지 어떤 점이 부족한지 말씀해달라구요.
이 채찍은 꽤 강했습니다. 아팠어요.
늘 느끼는 거지만, 나에 대한 피드백을 듣기 전에 어떤 말을 듣더라도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피드백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지켜봤다는 뜻이고,
내가 부족한 점을 빨리 캐치해서 더 큰 사람이, 동료가 되기 위한 길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내 약점을 인정하고 개선할 방법을 찾고, 겸손하게 배웠습니다.
이는 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데 좋은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료를 지켜보며 눈덩이 굴리기
여러분들 주변엔 어떤 동료가 있나요?
저는 제 사수였던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미 미들~시니어 연차를 갖고 계시지만 인상적이었던 태도가 있었어요.
모른다, 실수다, 죄송하다
이런 표현을 솔직하게 해 주셨어요.
한 분야에 오래 몸담고 있다 보면 신입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알량한 자존심이라는 게 있어봤거든요.
되게 멋지다고 느꼈습니다.
동료의 이런 태도를 보고 나도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정말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리적 안전감"을 아시나요?
심리적 안전감
조직 구성원이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부족한 점을 드러내도, 무시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출처: KDI 경제정보센터
사수의 이러한 태도가 저도 뭔가 잘못했거나 모를 때 똑같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모른다면 알려줄 수 있고, 모두가 모른다면 함께 알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요.
과거로 돌아갈래?
신입 개발자로서 2년 동안 저는 이러한 눈덩이를 굴렸습니다.
하나씩 굴리다 보니 점점 커졌었네요. 굴릴 땐 몰랐어요.
제가 가진 하루 24시간이라는 물질적 제약 속에서 악착같이 뭔가를 해보기도 했고 새로운 시도도 해보았어요.
꾸준하게 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눈덩이를 단 몇 개월 만에 굴려서 저보다 더 빠른 성장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근데 비교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저는 저만의 속도가 있더라구요.
나 자신은 자신이 잘 알아야 합니다.
나를 알아가는 이것도 노력이 필요하더라구요.
저는 그동안 주변만 챙겨 왔지, 제 자신에게 꽤나 소홀했습니다.
이젠 저도 챙겨보려고 합니다.
아무튼, 저는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이렇게 바쁘게 못살겠습니다.
잘 살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열심히는 산 것 같아요.
당장의 선택은 후회스러울 수 있습니다. 실수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구요.
훗날 이 일을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메꿔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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